악장들로부터 알 수 있는 사실은 그것이 ‘남의 것’에 속하는 존재일 뿐이고, 국문학사상 의미 있는 것은 변격악장 뿐이라는 점이다. 변격악장은 개인 창작악장들과 민간가요지사 채록의 논의에서 보듯이 민간에서 불리던 노래들이었다. 아악과 속악에 의해 연주되던 정격악장들이 주로 제향에 쓰인
악장에서는 압도적이라고 하면서, 용비어천가는 서정적 자아․서사적 자아가 함께 등장하여 주정적 세계․허구적 세계를 형성하면서도, 그것들이 결국 역사적 자아 혹은 교술적 자아의 재투사에 의해 변질되므로, 애당초의 서정․서사는 본 모습을 유지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성기
4. 악장의 특성
이 부분의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지금까지 살펴본 바를 짚어보면 악장은 시대와 문화의 소산으로 기존 장르들의 다양한 성격을 종합하여 지닌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내면적으로 서정과 서사, 교술의 다양한 성향들이 녹아들어 하나로 응집된 것이다. 관습적 차원에서 악장이 하나
1. 악장의 개념과 장르 명칭
악장이란 조선왕조의 건국을 찬양하고 정치적 이념을 표상한 노래로 된 궁중의례악을 말한다. 나라의 공식적 행사에 쓰이는 노래로서 고려와 조선의 궁중음악으로 불려진 노래 가사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기도 하지만, 흔히 ‘악장’이라면 우리 문학사에서 특별한 의
작품의 이해/감상
이 노래는 작자가 자신의 관향과 조상의 덕, 그리고 부모에 대한 효와 형제간의 우애,
선비로서의 처신 곧 출(出)과 처(處)를 4장으로 노래했다.
제1장에서는 문화 유씨 가문을 현양하고 있다.
제2장에서는 부모의 은혜는 끝이 없으므로 효의 실천을 일상의 근본으로 해야 하며,
악장문학으로서의 큰 몫을 무리없이 담당해 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로 접어 들면서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특히 사림들에 의해 많은 비판을 받게 된다. 이황의 평이 가장 대표적인 예로 그는 翰林別曲類는 ‘矜豪放蕩 褻慢戱押’ 하여 군자들이 숭상할 바가 아니라고 신랄하게 비
악장 형식 노래의 대표작이며, 세종이 친히 지은 '월인천강지곡'은 석가의 공덕을 찬양한 노래로, 문학적 가치보다는 어학적 가치에 더욱 의의가 있다. 훈민정음이 차차 보급되자, 그 전까지 한문드로 전하지던 수많은 문헌을 다투어 번역하게 되어 많은 불경류의 번역 사업과 아울러 번역 문학이 성행
Ⅰ. 서론
조선 전기의 악장과 시조에 대해서 알고자 한다면 우선 조선 전기의 배경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해야 한다. 조선 초기의 사회는 봉건사회라고 말하고 있다. 즉, 귀족적이며 절대왕권(絶對王權)적인 복잡한 성격을 지닌다. 이런 성격을 지니므로 유교적인 관료체제의 기반이 확립되어 성리학
악장이 신흥 국가의 왕업을 찬양하기 위한 송가(頌歌)의 역할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시가보다는 문학성에서 떨어지므로 더 이상 발전을 하지 못하고 자취를 감추는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각 시대 문학의 국문학적 양상을 띠